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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아이가 있었네.신은 그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줬지만, 그것들로는 신이 될 수 없었고, 아이는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눈이 멀어 그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지.백발이 된 후에야 스스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에서 오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네.하지만 너무 늦어버렸어.더는 푸른 하늘도, 향기로운 장미꽃 냄새도, 짜고 달짝지근한 액체도 기쁨을 주지 못하는걸.그것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오랫동안 마음 잃은 채로 살아와, 인간도 신도 아닌 무엇인가에 낑겨 있기 때문이네.병실에 누워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홀로 죽어갈 뿐이지.​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와 있는데, 저 멀리에 어린아이가 한 명 있었네.병원 주변의 공원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의 작..

소설 2024.10.27 큐널 블로그팁

기밀유출

중앙정보부 소속 요원 a는 지금 중앙 서버실에 들어와있다. 기밀 정보를 유출하기 위해서이다. 서버실은 어둡고 춥다. 기계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와 서버의 동작 여부를 알려주는 불빛들이 깜빡인다. 지금은 새벽 4시경. 경비원 두 명은 2시간 전 a와 술을 마시다가 곯아떨어졌다. a와 얼굴을 잘 알던 사이였던 덕이다. 처음엔 경계하더니 임무를 위해서 왔다고 하면서 상사를 몇 번 욕해주고 적당히 둘러대며 비닐봉지에서 술을 꺼내자 얼굴이 금방 풀어졌다. 아무리 보안이 철저한 시설이라고 해도, 다소 불필요해 보이는 임무는 항상 있기 마련이고, 말만 잘 하면 사람들은 금방 풀어진다. 특히 아는 사람의 힘은 강력하다. 사람을 설득할 때는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낫다. 한 명이 FM대로 해도, 다른 한 명은 서글서글할 확..

소설 2024.10.27 2 큐널 블로그팁

지호의 편지

무더위가 막 올라오던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방학을 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날은 이미 초여름에 접어들었다. 밖에는 여전히 해가 환하게 떠 있었다. 어느 때와 같이 중학교 1학년 지호는 하교 후, 거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호의 아파트 창가 바로 앞에는 넓은 6차선 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유리가 있어서 소음을 어느 정도 막아줬지만, 그래도 귀기울이려고 하면 금방 차가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지호의 일상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교가 끝난 후에는 통금 시간에 따라, 오후 6시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부엌 가스렌지 위에는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지호의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눈을 내리깐채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저녁 먹어야지." ..

소설 2024.10.27 큐널 블로그팁

괴물

마을에는 괴물이 있었다.그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었다.괴물을 만나면 도망쳐야 해.엄마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왜죠?내가 물었다.괴물에게 먹히면 아프니까?죽으면 안되잖니.하지만 정말 괴물에게 먹히는 순간이 아플까?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지만 괴물은 나쁘단다. 사람들을 잡아먹고 마을에 피해를 입히잖니.하지만 나는 괴물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괴물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다.소문만이 무성했다.그저 괴물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사람은 온데간데 사라진다는 것밖에는.나머지는 파생된 소문들이었다.몸집이 크고 울음소리가 무시무시하다느니, 순식간에 사람을 꿀꺽 삼킨다느니.거기에 따른 방어 방법들과 도구들이 생겨났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만들어졌다.그 가게들은 영업이 아주 잘 됐다.실체가 있는지도..

소설 2024.10.27 1 큐널 블로그팁

별빛

그녀는 내가 여기에 처음 올 때부터 거기 누워 있었다.그녀는 그 수많은 규칙과 규정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가끔씩 그녀가 일어나 있을 때가 있었다.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묻곤 했다.이 어찌 보면 아무 의미도 없고 제약이 많은 일에 자원하고 이걸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그럴 때면 그녀는 대답했다.'나'를 찾기 위해서라고.하지만 이상했다.이곳은 실험실에 불과했다.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면, 진짜 세상으로, 밖으로 나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나는 '나'라는 것은 결국 다양한 것을 경험해 봐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임무를 위해 어떤 복잡한 규칙과 규정이 있는 게임 같은 가상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자유롭게 ..

소설 2024.10.27 4 큐널 블로그팁

앞으로

+1나에게는 아주 신기한 장치가 있다. 며칠 전 걸어가던 와중에 발에 뭔가가 걸려서 그것을 주웠다.그것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붉은색 버튼이 달린 손바닥만 한 작은 장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바깥에 있는 걸 아무거나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세상은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기 때문에..아무튼 그래서 그 장치에 달리 조그마한 버튼을 여러 번 꾹꾹 눌렀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는 실망했다. 그래도 뭐 불이라도 들어오거나 소리라도 날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장치를 주머니에 넣고는 집으로 갔다. 장치의 비밀을 알게 된 건 바로 다음날 오전이었다.그날 오전은 조별 과제가 있는 날이었다.같은 조 친구들은 항상 그렇듯 전부 탈주했고, 나 혼자서 과제를 다 준비하고 ..

소설 2024.10.27 1 큐널 블로그팁

칼 앤서니

1"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레아가 불 켜진 철탑에 가까이 가서 구경하자고 말하자, 칼은 이렇게 대답했다. 둘은 호텔의 창문 앞에 선채로 밖을 바라보고 있고, 방에는 은은한 조명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아리에테는 서쪽 국가 중 예술적으로 가장 유명한 나라의 수도다. 철탑은 이 도시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온다.레아 아셀리아도 그중 한 명이었다.아리에테로 오기 일주일 전, 레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여행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시작된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막대한 재산을 가진 레아의 어머니는 본가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작은 시골집에 레아와 유모를 남겨두고는, 집에서, 혹은 온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파티를 열었다.어머니는 잘 손질된 ..

소설 2024.10.27 3 큐널 블로그팁

이상한 아빠

10살 난 어린 티미는 아빠를 보고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어떻게 저렇게 일찍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고 다시 일찍 나갈 수가 있는 걸까?나가서는 뭘 하고 있는 거지?아빠는 매일 새벽이면 밝고 쾌활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신발장을 나섰다.그리고 아주 늦은 밤이나 새벽 지친 모습으로 들어오곤 했다.그럴 때마다 아빠의 손에는 티미와 가족에게 줄 선물이 양손 가득 쥐어져 있었다.티미는 집안의 귀여운 막내이자 동네 말썽꾸러기로 유명했다. 호기심이 많고, 매사 해맑은 아이였다. 그래서 선물이 오면 언제나 그것을 풀어놓은 후에 금방 고장내버리기 일수였다.티미가 아빠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건, 이 선물들이 거의 매일 매일 도착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게다가 그 선물들 역시 매우 고가였다.티미의 아빠는 아이폰..

소설 2024.10.27 1 큐널 블로그팁

맨정신

민은 눈을 떴다.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한 다음이었다.지하철이 들어와 사람들은 바쁘게 개찰구를 통과하고는 계단으로 내려갔다.민은 멍하니 서 있었다.뭘 하려고 했는지, 여기에 왜 서 있는지 몰랐다.손에는 꼬깔콘 모양의 아이스크림 과자에 올라간 생크림 아이스크림이 손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민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아...? 이런, 또 정신을 잃어버렸나봐."민은 안경을 손등으로 들고는, 먼저 두껍고 통이 큰 회색과 흰색이 함께 짜여진 코트 소매로 눈을 비벼서 눈물을 닦았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앞쪽 쓰레기통에 버렸고, 둘러매고 있는 검정색 크로스백 지퍼를 열어서는 비닐별로 소분된 물티슈를 찢어서 손을 닦은 후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그리고 앞을 보니, 거울이 있었다.작은..

소설 2024.10.27 큐널 블로그팁

저택

1꺼진 모니터 화면처럼 어두운 하늘별도 달도 없는 그곳엔 저택이라고 하기에도 민망스러울만한 작은 2층 저택 하나가 서 있었다순간 하늘에서 빛이 잠시 반짝이더니이내 땅으로 떨어졌고저택 앞을 순간 환하게 밝혔다떨어진 것은 한 소년소년은 저택을 보고 가소로운 미소를 짓더니왼쪽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낸다단검에 소년이 내는 빛이 반사되어 밝게 빛난다2소년이 단검을 저택의 문 앞으로 치켜 세워 휘두르자저택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그리고 안에서 나타난 것은..과연 무엇이었을까3그것이 나타난 순간 소년의 빛은 휙 하고 꺼져버렸고주위는 다시 어두컴컴해졌다무엇인지 모를, 어디에 있는지 모를 그것이 소년의 주위를 빠르게 멤돌았고소년은 무엇인지 모를 것을 향해단검을 마구 찔러댔다소년의 얼굴에는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흩뿌려졌다4소년..

소설 2024.10.27 큐널 블로그팁

접속

나에게는 능력이 한 가지 있다.바로 지구상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생각에 순간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다.이 능력은 주로 밤에 발동되며, 그저 가만히 있거나 눈을 감고만 있으면 그 어떤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이 머리에 한번에 다 그려진다.그저 떠오른다.나는 하는 것이 없고, 눈을 감으면 머리에 그저 떠오를 뿐이다.내가 그것을 그저 세상에 옮겨놓기만 하면, 그것은 그대로 현실이 된다.하지만 자주 그렇게 하진 않는다.왜냐하면 이것은 명백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이고, 때로는 이 스케일이 너무도 커서 현실에 옮기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몇몇 사람들은 말한다.그것은 네가 살아온 특수한 환경이 너를 그냥 그렇게 만든 것일 거라고.자기 자신의 수많은 경험이 합쳐져서 떠오른 자신만의 것이라고.하지만..

소설 2024.10.27 큐널 블로그팁

영혼을 먹는 사자

영혼을 먹는 사자여, 내 영혼을 나에게 돌려주시오.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주시오.안된다. 이다말. 그대는 이미 그대의 영혼을 나에게 팔았다. 나는 그대의 영혼을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지.그러면 그걸 다시 토해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잘근잘근 씹지 않고 그저 삼킨 것이라면 소화되기 전에 토해내면 저는 제 영혼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내가 그래야할 이유는 뭐지?저는 영혼을 거래한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혼을 드린 결과가 어떨지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한채로 성급하게 영혼을 팔았습니다. 이건 불공정 계약입니다.흠.. 일리가 있는 말이군.사자는 영혼을 토해냈다.그리고 이다말은 그 영혼을 다시 삼켰다.감사합니다. 사자님.명심하게나, 앞으로 영혼을 팔기 전에는 그 조건이 뭔지를 잘 생각..

소설 2024.10.27 큐널 블로그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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