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난 어린 티미는 아빠를 보고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일찍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고 다시 일찍 나갈 수가 있는 걸까?
나가서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빠는 매일 새벽이면 밝고 쾌활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신발장을 나섰다.
그리고 아주 늦은 밤이나 새벽 지친 모습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의 손에는 티미와 가족에게 줄 선물이 양손 가득 쥐어져 있었다.
티미는 집안의 귀여운 막내이자 동네 말썽꾸러기로 유명했다. 호기심이 많고, 매사 해맑은 아이였다. 그래서 선물이 오면 언제나 그것을 풀어놓은 후에 금방 고장내버리기 일수였다.
티미가 아빠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건, 이 선물들이 거의 매일 매일 도착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게다가 그 선물들 역시 매우 고가였다.
티미의 아빠는 아이폰을 사 들고 왔다.
그것도 매일 같이.
엄마는 아빠에게 뭘 이렇게 비싼 걸 사 오냐고 잔소릴 했지만, 희한하게도 정말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빠는 계속해서 아이폰을 사 왔고, 언제부턴가 벽 한 구석에는 가득 아이폰 상자가 쌓이게 됐다.
티미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게 맞아요..?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이렇게 아이폰을 맨날 사 오는 아빠는 없어요. 어떻게 또 이렇게 맨날 일찍 나갔다가 지쳐서 들어오고, 또 다음날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갈 수 있는 거죠? 아빠는 이 반복이 지겹지 않은 걸까요? 이게 정상적인 건가요? 아빠는 어떻게 저럴 수 있죠?
그럴 때면 엄마는 말했다.
돈 좀 벌었나 보지 뭐. 우리 나이 같이 늦은 나이에 이렇게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거야. 너도 아직 어려서 잘 몰라서 그렇지만,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단다. 하다 보면 다 돼.
티미는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는 좀 이상했다.
티미가 누나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했다.
아빠가 돈 잘 벌면 좋지 뭐. 우리가 쓸 수 있는 돈도 많아지는 건데.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필요한 게 많아지거든.
식구들은 이러한 상황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저 무뚝뚝하게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티미는 이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암만 생각해도 티미에게 아빠는 이상했다.
아빠는 집에 밤이나 새벽 늦게 들어왔다. 밤 11시를 넘기는 것은 기본이요, 새벽 3시를 넘어서 들어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아빠는 대체로 무뚝뚝하게 인사만 하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오징어 하나와 맥주를 뜯으면서 보다가 오징어를 입에 문채로 잠들곤 했다. 티미나 다른 가족과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대화가 있다고 해도 아주 중대한 돈 문제가 아니고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티미는 어쩌나 밤이나 새벽에 깨면, 엄마 품을 벗어나 아빠의 서재로 가서는, 앉아서 먼 발치에서 아빠가 tv를 보는 걸 같이 보곤 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티미가 어쩌다 말을 걸어도 아빠는 대답을 잘 안 해줬다.
하지만 아빠는 그러면서도 어김없이 새벽 5시 반이면 샤워를 하고 구두를 닦고 옷깃을 세우고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신발장을 나섰다.
티미는 이것이 과연 정상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티미는 사람을 좋아했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오가는 모임이 좋았고, 자신도 대화에 끼면서 이것저것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또 티미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상상을 하려면 책을 읽는 것이 제격이었고, 상상도 하고 책도 읽으려면 시간이 많아야 했다. 이런 것들이 어린 티미의 삶에서 가장 큰 행복들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아빠의 삶에는 이러한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 간의 대화는 있지도, 있을 수도 없었고, tv를 보면서 아주 짧은 시간 여흥을 보내는 것 외에는 시간도 별로 없어 보였다. 어쩌다가 무슨 중요한 얘기가 나와도 아빠가 낮게 으르렁대며 내뱉는 소리도 '시간이 없어서..'였다.
티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게 과연 정상적인 삶인가? 티미도 나중에 어른이 될 거고 아빠처럼 일을 하게 될 텐데, 과연 자신도 저렇게 살게 되는걸까? 피곤할 텐데도, 어떻게 매일 아침이면 다시 저렇게 멀쩡하게 나가는 거지? 그리고 티미는 그걸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일요일 저녁. 티미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것은 분명히 뭔가가 잘못된 것일 거라고, 아빠가 왜 그렇게 일찍 나가며, 왜 그렇게 지친 모습으로 아이폰을 매일 같이 사들고 들어오는지를 밝혀내고야 말겠노라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제정신인 자기라도 아빠를 알아봐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새벽 5시. 티미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너저분한 집구석의 옷장 안에 숨었다. 티미는 아빠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10초 뒤에 자신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추웠다. 하지만, 티미는 아빠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봐야만 했다.
티미는 아빠를 따라갔다. 아빠의 발걸음은 집에서 어쩌다 아빠가 나가는 모습을 볼 때와 다르게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아빠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누나에게 아빠는 어디로 가고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을 때,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간다고 한 그 말 그대로였다. 버스 줄에는 아빠 말고도 아빠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빠가 그 줄에서 갑자기 이탈하더니, 버스 정류장 뒤쪽의 공원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역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라고 생각하고 티미는 아빠를 몰래 따라갔다. 아빠는 정자와 호수가 있는 공간에서 잠시 멈춰 섰다.
아빠는 한참을 정자와 호수 사이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티미는 정자 의자에 몸을 숙이고는 아빠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데도 몇 분이 지났지만 한참을 그냥 거기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티미는 이제 하품이 나왔다. 뭔가 아빠를 힘들게 할만한 일들이 마구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공원에 와서 이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다니, 대체 그 지친 채로 아이폰을 사 들고 집으로 오던 모습은 뭐였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깜빡 잠이 들었을까. 다시 눈을 떠보니, 아빠가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걸까. 티미는 정자에서 빠르게 몸을 일으켜서는 아빠가 있던 자리로 가 보았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호수 공원에는 아침 안개가 조금 짙게 끼어 있을 뿐이었다.
바닥은 새벽 이슬을 맞아 축축했고, 이끼와 풀숲 덤불이 발에 채였다.
아빠의 구두 발자국이 티미의 발자국과 겹쳐진 채로 이곳에서 뚝 끊겨 있었다.
티미는 아빠를 놓쳤다고 생각하고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스스로를 분해 하면서 아까 아빠가 있던 제자리에서 발을 쾅쾅 구르면서 짜증을 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잔디 바닥이 열렸다.
그리고 티미는 열린 바닥의 공간으로 갑자기 쑥 하고 빠져버렸다.
그 공간은 마치 거의 수직으로 된 미끄럼틀 같았다. 티미는 아주아주 빠르게 내려갔고 너무 놀라 그만 정신을 잃었다.
미끄럼틀은 거의 수직에 가깝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져서는, 속도를 줄여줬다.
티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어떤 커다란 쓰레기 처리장 같은 곳이었다.
티미가 떨어진 곳은 어떤 바퀴가 달린 큰 플라스틱 통이었다.
주변에는 온통 쇠로 된 부품들이 티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미끄럼틀의 경사가 완만해서 티미는 다치지 않고 이 부품들 위로 착지했다.
티미가 일어나자,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온통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수증기로 가득했다.
티미는 부품 더미를 해치고 내려와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바닥에 뭔가가 또 채였다.
티미가 멈추고 아래를 보자, 거기서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내는 유리관 하나가 수증기와 성애가 가득 찬 채로 올라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두 개의 유리관이 있었는데, 하나는 내려가고 있고, 하나는 올라오고 있었다.
티미는 유리관의 수증기를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티미가 거기서 발견한 건...
바로 창백하게 굳어 있는 아빠의 얼굴이었다.
아빠...? 아빠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요? 저기요..! 여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아빠 좀 살려주세요.
하지만 수증기 소리에 티미의 목소리는 묻혔다.
티미는 저쪽 밝은 쪽의 웅성거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거기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중앙에 있었고, 그 경계 양쪽으로 파란색 실험복을 머리까지 뒤집어 쓴 누군가 들이 서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티미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까이 갔다.
한 명이 아래를 보곤 티미를 발견했다.
이크! 들켰다.
아아아아아아 젠장.
옆의 다른 이가 말했다.
어린 애잖아?!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우린 들킬 수 없는데..
그리고 그들은 공장 안을 마구 뛰어다녔다.
패닉이 온 듯 했다.
그때 천장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조용!!!!!! 무슨 일인가?
아..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위대한이시여.
공장 같은 곳 왼편에서 문이 열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파란색 실험복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나왔다.
아빠를 살려주세요. 아빠가 죽은 것 같아요. 관 속에서 꿈쩍도 안 해요.
티미. 진정해라.
무슨 말이에요..
그 사람은 너희 아빠가 아니다.
무슨 말이에요..
직접 보아라.
그 리더 격인 자는 티미를 자신이 나온 왼쪽 문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티미가 그 안에서 본 것은..
관 속에 든 수많은 아빠였다.
이게.. 대체...
티미. 우리는 제3제국에서 온 다항성 종족이란다. 너희 행성의 인간들을 도와주기 위해 왔지.
너희 아빠는 지금 우리의 이 지하 공장 중앙 제어실에서 편히 잠자고 있어.
그리고 그 대신 너희 아빠의 신경 물질이 영향을 끼치는 로봇을 만들어서 우리가 매일 너희 아빠의 회사와 너희 가정으로 보내고 있지.
자, 이제 네가 아마도 아까 봤을 로봇 235가 들어오고, 357이 나갈 시간이다.
바닥에서 아까 보았던 유리관 하나가 세워지더니, 유리 문이 열리고 로봇 아빠가 걸어서는 아까 티미가 내려온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늘 보던 무뚝뚝하던 그 모습이었다.
아빠는 이제 회사에 가서 일을 하게 될 거다. 소진되는 에너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tv 전자파를 이용해서 채우고, 그 에너지를 다시 우리 공장에 공급하고, 수리된다. 또한 여기서 더 많은 충전 량을 얻기도 하지.
진짜 아빠를 보고 싶니?
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렴.
티미는 그 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자, 가장 지하 공간의 심층부에 콘크리트로 된 관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그 자가 손을 위로 올리자, 관의 콘크리트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아빠가 곤히 자고 있었다.
아빠의 얼굴은 티미가 늘 보던 로봇 아빠의 얼굴보다 훨씬 주름지고 쳐졌다.
이마와 입 주변의 주름으로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입만큼은 미소 짓고 있었다.
너희 아빠는 지금 편안하다. 아주 미세한 신경 물질만 네트워크를 통해 로봇들에게 전달해 주며,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지.
하지만.. 그럼 지금까지 봐왔던 아빠는 가짜인 거잖아요! 아빠의 진짜 인생은 어디로 가고요? 꿈만 꾸게 여기 둘 순 없어요. 아빠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안 그러면 내가 구할 거예요!
오, 티미.. 당연히 꺼내줄 수 있지. 하지만, 네 아빠가 여기서 나가면 지금까지 수많은 아빠 로봇들이 교대로 해왔던 일들을 아빠가 한 몸으로 온전히 버텨내야 돼. 너희 아빠를 처음 발견한 날, 며칠만 더 그대로 두면 죽을 사람처럼 보였단다. 우리가 데려와서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낸 걸 거다. 물론 너희 아빠는 강하다. 우리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 강함이 과연 영원할까? 티미 지금 네가 아빠를 구하면, 아빠는 현실을 살아가겠지 암. 하지만 그게 과연 정말 행복한 걸까? 그건 네가 늘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게 아니냐. 잘 생각해 보렴.
티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 자는 말을 다시 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티미는 눈을 들었다.
네가 아빠의 일을 대신해 주는 거지.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아직 젊고, 이제 곧 네 아빠보다 강해진다. 네가 일을 하게 되면 아빠는 더 이상 우리의 힘을 빌리고 로봇을 이용할 필요 없이, 행복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네가 변해야 한다. 너희 아빠는 너무 늙고 지쳤거든.
알겠어요...
티미는 말했다.
열심히.. 열심히 공부할게요.
그래.. 그래야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렴. 혹시 우리가 필요하다면 찾아오고.
자, 여기 선물이다.
티미의 손에는 아이폰 박스가 들려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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