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시니컬한 감성, 반딧불이의 묘와 지브리 영화의 두 축에 대하여

카테고리 없음 2025.02.19 댓글 유니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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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이의 묘를 리뷰해 보겠습니다.

반딧불이의 묘는 지브리의 나름 초창기인 1988년에 개봉한 영화인데요, 소설 원작으로써 전범국인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개봉 당시에 전쟁 옹호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막상 감상해 보시면 표면적인 줄거리는 전쟁 옹호라기보다는, 전쟁 그 자체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 그보다 더 나아가서는 오히려 인간 본연의 어리석은 모습에 대한 감성이 더 큰 영화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더 나아가서는 오히려 전범국이었던 당시 일본에 대한 자책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이니,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봐서 이 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조금 이른 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내에서 부잣집 주인공인 소년 14살 세이타와 그의 여동생은 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살던 집과 마을이 불에 타고, 어머니를 잃게 됩니다. 그렇게 고모의 집에 들어가서 남은 돈을 보태어 살게 되는데요,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와중 기여하는 것 없이 식모살이만 한다며 고모의 압박이 더 심해지게 되고, 이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가지고 방공호로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소년 세이타에게는 사리분별 능력이 부족했고, 동생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도둑질을 하면서 지내다가 결국 동생은 죽어버리고, 자신도 곧 죽어버리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줄거리는 개봉 당시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줄거리만 봐서는 전쟁으로 인해 피해자가 된 소년이 죽게 되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보시면 꽤나 큰 반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세이타의 어리석은 사리분별 능력입니다. 분명 어른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보호를 받아야 할 시기임에도 세이타는 희한하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어리석은 부잣집 도련님은 아무리 그래도 정말 이상하리만큼 혼자서 자생하겠다는 고집을 부립니다. 영화를 실제로 보시면 아무리 어린애라고 할지라도 어느 시점에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해 보임에도 자신의 고집으로 결국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연출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일부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자신이 인간에 대해 가진 시니컬한 감성이 드러났다고 보기도 하고, 일본을 저런 사리분별 되지 않는 소년에 비유했고, 국민을 죄 없는 여동생에 비유했다고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영화는 전범국인 일본을 옹호한다기보다 그 어리석음을 책망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영화의 구조는 처음부터 남매가 죽은 뒤의 결말부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매를 상당히 전쟁에 의한 피해자로써 불쌍하게 보여준다 싶어서 너무 슬펐지만, 갈수록 전개가 이상해지는 걸 보면서 그러한 몰입이 깨지면서 이 영화가 옹호의 관점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자꾸 보면서 제발 고모한테로 돌아가... 이러면서 보고 있고, 아니면 이모 댁이라도 도쿄로 수소문해서라도 가던지, 14살이면 중1인데, 사리분별이 안되나 싶었고, 현실성이 초반에 빡 오다가 나중엔 없어져서 몰입이 안 됐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브리 영화의 개인적인 팬으로서 지브리 영화에는 크게 두 축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상적이고 이상한 이야기 축과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축이 그 두 축입니다. 이 반딧불이의 묘는 그중에서도 미야자키의 손이 닿지 않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감독과 각본의 전권을 쥐고 만든 영화입니다. 지브리 영화라고 하면 대표 감독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지만, 사실 스튜디오 내부에는 다른 영화 감독들도 있었으며, 그러한 전반적인 영화에 입김을 끼치고 있었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선배였던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기 작품들, 마녀배달부 키키나 이웃집 토토로 등이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당시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이디어를 내면 타카하타 이사오가 제동을 걸어주는 역할을 수행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하야오 감독이 단독으로 만든 모노노케 히메의 성공 이후 깨지게 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점점 더 이상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하야오 축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반딧불이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가구야 공주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손이 닿은 이야기들로써 또 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웃집 토토로까지의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를 좋아하고, 이후에 보여주는 이상적이고 이상한 이야기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해외에서는 이러한 미장센이 더 호평받고 있다는 부분에서 제 개인적인 취향은 평단의 평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지브리의 큰 두 축 중에서는 타카하타 이사오 축의 취향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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