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에 해가 질 때면 미나미는 계단을 내려왔다. 고풍스러운 오크 나무로 된 정교한 실내 디자인의 2층 저택.
미나미가 층계를 쓸며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은 엄마가 차려주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기 위함이었다.
엄마 이름은 이라쉬.
평소엔 침묵을 지키기로 유명한 이였지만, 저녁 시간에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고 식탁에 내온 후, 아이들이 먹을 때면 늘 말이 많아지곤 했다.
엄마는 저녁 시간 때만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어딘가 쏘다녔다.
미나미는 그동안 하루종일 2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저녁 시간.
나는 이 조금 이상한 가족과 살고 있다.
저녁 시간이면 파스타 세 그릇이 식탁 위에 오른다. 오크 나무로 된 식탁.
식탁 아래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이름은 고양이. 고양이는 온몸을 핥는다. 매일.
나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스파게티가 나오면 먹는다.
-그래, 오늘은 다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어딜 다녀오셨나요?
미나미가 평범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엄마가 말을 꺼낸다.
-나는 오늘 아침에 밖을 나갔단다. 현관문 앞 바닥에서는 오크 나무로 된 바닥재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고양이는 늘 그렇듯 식탁 아래에서 온몸을 핥고 있었지. 나는 나갈 때 어제 식료품점을 갈 때 가져왔던 갈색 종이 장바구니를 들고 갔어. 그 장바구니는 종이긴 하지만, 어제 가져올 때 비를 맞지도 않았고, 너무 많은 물건을 사지고 않아서 찢어지지도 않았거든. 그래서 그 장바구니를 들고 가기에 적절할 거라고 어제 밤에 잠들면서부터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들고 갔던거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본론을 말해주세요.
나는 파스타를 포크로 둘둘 감으며 참지 못하고 엄마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는 말끝을 흐렸고 대화가 단절되었다.
-그래, 너는 무슨 일이 있었니?
미나미가 나에게 묻는다.
나에겐 별일이 없었다. 그냥 학교 갔다가 집에 왔다.
-그냥 학교 갔다가, 집에 왔어.
-그렇구나. 근데 학교는 왜 가는거야?
-응?
-학교를 가는 이유가 뭐냐고.
-그야..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 하니까..
-왜 학생은 공부를 해야하는걸까?
-학생은 배워야 하니까..?
-배우는 이유가 뭐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함인가?
-아, 그 말을 들이니까 생각났는데 말이야..
엄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저번주에 문화센터를 갔는데 말이야, 거기서 만난 아주머니 한분이 있었는데, 옷 색깔이 엄청 예쁜 거 있지, 저저번주에 우리가 주말에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봤던 벨벳 소파 있잖니? 그 소파 같은 색이었는데, 그 가게 이름이 뭐였더라.. 혹시 기억하니? 아.. 가게 이름이 뭐였는지가 기억이 안 나네..
-사사시이시미시였어요.
미나미가 말했다.
-아, 그렇지. 그래서 그 가게에서 우리가 본 그 벨벳 소파 있잖니. 그 소파 색이 엄청 강렬했잖아. 엄청 새빨간색.
-맞아요. 그랬죠. 너도 기억하지?
미나미가 물었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그 문화센터의 아주머니가 어쨌다는건데요..
-아 맞다. 그 아주머니가 입은 색이 그 벨벳 소파 색을 봤을 때처럼 아주 강렬한 새빨간색이었어. 완전히 눈을 사로잡더구나. 그게 다야.
-아니.. 엄마는 저희가 다른 얘기 하고 있으니까, 이게 생각났다고 하셨잖아요.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그게 생각이 나신거예요?
-그러게.. 아무튼 그냥 생각이 났었어. 그 얘기가 뭐였는진 이제 기억도 안 나는구나.
문제는 나도 앞에서 한 얘기가 기억이 안 났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데..
-인간은 왜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다른 두 가지 주제를 연관시켜서 떠올리는걸까?
이건 엄마한테서 주로 많이 떠오른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 노화의 증상 중 하나일 수도 있는걸까?
나이가 들면 뇌의 어떤 부분이 뒤죽박죽이 되는걸까?
어쩌면 이게 치매와도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 생각해?
미나미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넌 그게 문제야. 생각이란 걸 안 하려고 하잖아. 맨날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남는 게 뭐니? 그걸 한번 생각이라도 해봤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말이야.
-글쎄.. 난 그냥..
그 순간, 갑자기 고양이가 일어나서 하악질을 했고 모두의 신경은 고양이에게로 흘렀다.
우리집 고양이는 성격이 아주 온순하기 때문에, 하악질하는 것은 매우 드문 구경거리이기 때문이다.
분명 무슨 일이 어디에선가 난 게 분명했다.
미나미, 그리고 엄마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집안 여기저기를 막 고개를 돌리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어디선가 무슨 소리 안 들려?
-글쎄.. 난..
엄마와 미나미가 한 마디씩 했다.
둘은 동시에 자리에 일어나서는 식탁이 있는 부엌을 뛰쳐나갔다.
나는 세그릇의 반 정도 남은 토마토 파스타와 함께 식탁에 홀로 남겨졌다.
늘 그렇듯 오늘도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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