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소개 및 후기
저는 고등학생 때 수능을 치지 않은채로 바로 일을 하다가, 군 문제를 해결하고 몇 년이 그저께 수능을 처음 봤습니다. 이미 달리 하고 있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능 역시 경험 삼아 쳐보는 느낌으로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기에 크게 간절하지도 않은 편이었고요. 그렇기에 다른 학생들에 비해 긴장김이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러가니 그냥 시험이더군요. 맨날 일상 속에서 답 안 나오는 문제만 몇 개월째 붙잡고 있다가 80분~100분만에 모든 답이 나오는 걸 하니까 좋았습니다. 학교라는 공간, 시험이라는 공간 속에서는 마치 세상 밖의 다른 일들이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끝나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울적해졌습니다.
아무리 의대생 증원을 통한 재수생이 많다 해도 여러 교실을 딱 한눈에 봐도 고등학생 친구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저는 더이상 대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니니만큼 오랜만에 고등학생 친구들이 이렇게 여럿이 모여있는 걸 봐서 좋았습니다. 한 시험장 반에 28명, 한 층에 총 4반이 있으니까 몇 명이 빠지는 걸 감안하면 100명 가까이 되려나요? 친구들이 어리긴 어리더군요. 뭔가 활기차고,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을 가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에너지와 기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수능은 몰랐는데, 한 학교에 남자 친구들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매일 헬스장에 나가서 하루 30분은 운동하고 있는데요,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체력이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제가 그래도 운동하면서 좀 철인이 된 것 같더군요. 암만 수능 전날 낮잠을 오래 잤다지만, 2시간만 자고도 하루를 버텨냈으니까요. 마지막 시험 할 때까지도 거짓말 좀 보태서 방금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쌩쌩했답니다. 사실 만성피로에 가깝게 살기 때문에 과장이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전반적으로 5만원~10만원 가량을 내고 휴가를 다녀온 기분입니다. 개인적으로 리프레시되고 좋았습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시험이나 보러 다닐까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실시간 후기 1 : 출발
6:30,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고 출발합니다. 어둑어둑합니다. 새벽에 나가서 버스를 타니, 내가 이 시간에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수능 시험이라는 게 참 아침잠 많은 사람한텐 불리한 시험이다 싶습니다. 사람마다 생활리듬이 다 다른 것인데,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이렇게 치면 안되는 걸까요?
버스에 타니 저 말고 다른 학생들도 많습니다. 단, 이 친구들은 제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내리진 않더군요. 정말 여러 학교로 장소가 나눠진 듯 합니다. 출근 시간은 관공서는 1시간 가량 늦춰져서 네이버 지도 앱에 보이는 것보다 실제 도착 시간은 더 빨랐습니다. 여러 인터넷 소스들에서 적어도 시험이 시작하는 8:10 30분까지 도착하라고 그러고, 버스를 보니 6:41 버스에 45분 정도 거리에 학교가 있길래, 7:30까지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오차를 계산해서 1시간 전에 출발했는데요, 버스가 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예상시간보다 빨리 도착해서 학교까지는 7:07까지 도착했습니다.
학교까지 걷는 거리는 또 얼마나 긴지요. 그래도 같이 가방 매고 가는 학생들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청소부 아저씨도 보이고, 안내 하시는 요원 분들, 대기하는 택시, 경찰차도 보입니다.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실시간 후기 2 : 학교
학교 앞에는 수험 번호에 따른 교실 층과 번호가 써 있습니다. 저는 맨 꼭대기층을 배정받았네요. 4층이라 걸어가는 게 싫어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장애인용일까 싶어 앞의 문구를 봤는데, 딱히 그런 말이 없길래 탔는데, 타고 보니까 일반 학생은 타지 말라고 내부에 적혀 있더군요.
1교시 국어는 조금 어려웠지만 할만했고 어린 학생들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소릴 복도에서 듣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2교시 수학은 길고 지루했습니다. 끝나고 나니까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싶은 생각이 들고, 그냥 관두고 집에 갈까? 싶었습니다. 이때부터 이미 모든 시험이 끝날 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고 점심. 점심 시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50분이 점심 시간이라곤 하지만, 그전에 omr 카드와 문제지를 배부하는 준비령 예비령이 10분 전에는 시작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30분 정도가 여유 시간이라 보면 됩니다.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다음 시간 과목들 문제와 노트를 봐줍니다. 3교시 영어도 듣기 평가는 쉽고 재밌는데, 나머지는 어렵습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마지막 4교시 한국사 전, 사실상 5교시는 많이 응시하지 않아 마지막이 되는 이 시간대에 학생들이 가장 시끄럽습니다. 이제 집에 간다 싶은가 봅니다. 매우 소란스러워서 누군가 제지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저는 5교시까지 쳤습니다. 반 이상의 학생들은 5교시를 등록한 후에도 포기합니다.
급하게 산 수능 시계, 카시오 모조품이라 그런가 몰라도 초침 소리가 너무 커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전혀 안 들리더군요. 오히려 위장에서 나는 소리가 더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컨트롤에 성공해서 마지막 5교시를 빼고는 조용히 임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하지 않고. 매순간에 충실하며 할만큼 최선을 다하니까 초연해지고,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더군요.
마지막 5교시를 끝내니까 비로소 완전히 자는 친구들도 생기는 등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시간 후기 3 : 귀가
저는 시험을 보는 동안은 다른 학생분들께 소리로 피해 끼치기 싫고, 약간이라도 움직이거나 소리를 안 내고 싶어서 최대한 음식물도 적게 섭취하고 물도 적게 마셨습니다. 그래선지 나올 때 목이 많이 말라서 물을 많이 마셨습니다. 또 가방에 싸온 초콜릿 등의 간식도 수능 시간에는 속이 쓰릴 수 있다고 해서 반 개만 먹고, 점심도 샌드위치, 견과류, 또 초콜릿 반개만 먹었습니다. 매교시마다 화장실에 갔고, 물은 목을 축일 정도로 한모금만 마셨고요. 그렇게 하고 나니 조금 지나니 나른하면서 허기가 오더군요. 외식을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나와보니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11월은 해가 짧아져서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해가 져버립니다. 깜깜할 때 출발해서 집에 깜깜할 때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뭔가 끝났다는 마음과 함께 괜히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갈 때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뉴스에서 모든 곳에서 수고했다고 말하니까 왠지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도 들고 어쩐지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도 들었습니다. 정말로 첫 수능을 보는 수험생 분들은 이 순간이 많이 뿌듯하시겠지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부록 : 추천 준비물
기름 종이를 추천합니다. 은근히 교실에 오래 있다보니 얼굴이 잘 기름집니다. 세수를 안 하면 상당히 기름지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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